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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사이클월드 2006년 5월호에 실린 인터뷰의 번역입니다. 글이 길어서 2부로 나누었습니다. 뒤의 내용은 차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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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evin Schwantz 홈페이지


챔피언의 감상
by 메튜 마일즈

늦은 오후, 나는 케빈 슈완츠의 큰 흰색 픽업 트럭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2일간 GSX-R로 로드 아일랜드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레이스 트랙에서 시간을 보낸 뒤에, 지는 해를 보면서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큰 사이즈의 타이어는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고 컨트리 스타 토비 키스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각주:1]

I ain’t as good as I once was 나는 예전 같지는 않아
My how the years have flown 내 세월은 흘러가고 있지
But there was a time 하지만 그때는 그랬지
Back in my prime 내가 청춘일 때는
When I could really hold my own 내가 정말로 굳건했던 시절에는 말이야

슈 완츠는 왜소한 팔을 라디오 쪽으로 향하면서 나에게 이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노래 가사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니면 그는 단지 음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이후 저녁식사 때, 우리는 슈완츠 라이딩 스쿨의 강사들 몇 명과 슈완츠가 멘토링을 하고 스즈키가 후원하는 블레이크 영이라는 17살의 선수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는 슈완츠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삶이다. 그에게는 또 다른 호텔에서의 밤이고 또 다른 얇은 메뉴에서 주문한 식사였다. 그는 이러한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제 41살이 된 슈완츠는 고향인 텍사스에서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었던 자신이 참가했던 레이스들을 다시 생각해냈다. “내 아버지는 이제 65살이 지났어요. 그는 이제 영원히 더트 바이크를 타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슈완츠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이며 결코 쉽지 않은 사랑하는 스포츠로 다시 돌아왔다. 이것이 왜 슈완츠가 AMA 레이스에서 피트를 지키고, 왜 젊은 라이더들과 일하며, 왜 지금은 효력이 존재하지 않는 AMA 프로레이싱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왜 팬들에게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 그 이유이다.

슈완츠는 십여 년 전에 은퇴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영웅이다. 25번의 그랑프리 우승, 29번의 폴 포지션, 1993년의 500cc 월드챔피언 타이틀 그리고 은퇴한 뒤에도 자신의 번호가 영향을 끼치는 레벨에 도달한 유일한 선수 중 한 명이다.[각주:2]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바이크에서 내렸을 때도 그가 편안한 성격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이 중년 남자는 독일 GP에서 웨인 레이니와 붙었던 때를 기억해냈고 깔깔거리는 소녀가 그에게 사진 포즈를 부탁했다. 슈완츠는 발렌티노 롯시와도 저녁 식사를 가졌다. 그리고 슈완츠는 이들을 모두 동등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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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로버츠 주니어는 나에게 자신의 과거 레이싱들에 대해서 아쉬워하지 않는 유일한 GP 챔프가 슈완츠라고 일러줬다. "두한, 로슨, 코신스키. 이 모든 사람들은 레이스나 챔피언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이겨야만 했었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케빈은 그렇지가 않죠."

물론 슈완츠도 후회는 한다. 그는 레이니가 하반신의 마비를 겪지 않고[각주:3] 그가 여전히 '더트 바이크로 즐겁게 달릴 수 있길.' 바랬었다. 슈완츠는 그 불가능함이 이루어진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자신의 타이틀을 맞바꿀 것이다. 그도 많은 사고를 당했고 그래서 왜 자신은 휠체어에 앉아 있지 않은지 의문을 가진다. "나는 그가 한번 떨어질 때 열 번은 넘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말했다. "어떻게 나는 그들 중에서 다치지 않은 한 명이 되었을까요?"

슈 완츠는 모든 내용들에 대해서 솔직하고 꾸밈없이 이야기했다. 자신이 어떻게 모터사이클에 입문해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는지, 레이니와의 배틀, 야마하와 계약하는데 실패했던 이야기, 스즈키의 MotoGP 프로그램, AMA 레이싱, 맷 믈라딘의 슈퍼바이크 우세 그리고 벤 스파이스가 다음번의 케빈 슈완츠인가에 대한 모든 내용들에서 말이다.


"어떤 것도 영원히 앞에 놓여있지 않습니다. 나는 실패할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아요. 항상 그 기회에 대한 것만을 바라봅니다. 1984년에 스즈키가 윌로우 스프링스 레이스 파크에 나를 초대해서 GS700을 타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었죠. '당신은 테스트를 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연습을 좀 할 필요가 있어요. 그 후에 레이스에 나가도록 합시다.' 나는 생각했죠. '그래서 뭐?' 그것은 팩토리 슈퍼바이크였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타보지 않은 바이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요. 심지어 첫 랩에서 바로 사고를 당했을 때도 최소한 내가 이걸 탈 거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영국에서의 레이스 경기에서도 비슷했습니다. 베리 쉰이[각주:4] 내게 '기다려봐. 니가 내 500 바이크에서 달릴 수 있는지 볼 거야. 아마 몇 GP레이스에 나가게 될 것이고.' 라고 말했었습니다. 나는 네덜란드 아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죠. 당시에 마이클 볼드윈, 랜디 마몰라 그리고 케니 로버츠가 그곳 포디움 스탠딩에 있었어요. 내가 거기 다가가자 케니가 말했죠. "이봐 자네 여기서 뭐하나?", "그냥 재미보고 있는데요.", "그래? 재미보기에는 좀 시끄러운 장소를 골랐구먼." 내가 말했죠.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우리는 모터사이클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그렇죠?"[각주:5]

"나의 라이딩을 배우는 속도는 매우 가팔랐습니다. 기본적인 기술은 더트 트랙을 타면서 모토크로스와 트라이얼로 내 아버지와 데릴 삼촌에게서 배웠어요. 그럼에도 로드레이싱에 갈 때까지 나는 멘토가 없었지요."


"라이더는 도움을 요청하거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요시무라 팀 보스였던 슈에히로 와타나베는 항상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었고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교정해 주려고 했었습니다. GP에 있을때도 팀원들과 엔지니어들이 그랬었죠. 그들은 레이스에서 술책을 부렸던게 아니라 실제로 스피드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사람들이 조언을 해줄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죠. '이봐, 당신들이 언제 그랑프리에서 우승해봤어?' 그들을 믿지 않았고, 도움을 받길 바라지 않았죠. 내 마음에는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신용 증명서를 가지고 나에게 '여기 당신이 하는 일이 있소. 여기 내가 생각하는 당신이 다르게 해야 하는 일이 있소.' 라고 말했다면 나는 아마 그의 말을 들었을 겁니다."


(웨인 레이니와 케빈 슈완츠의 1991년 독일 호겐하임)

"매번 내가 우승할 때 2위를 했던 친구는 웨인 레이니였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로버츠는 항상 지켜보고 있었죠.[각주:6] 만일 내가 웨인을 확실하게 꺾을 수 있었다면 로버츠는 트랙 저 귀퉁이에 서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코너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내가 웨인을 확실하게 이기게 했는지 찾아내려고 했었겠죠. 내가 레이스에서 레이니를 이긴 날에는 그와 로버츠 두 사람 모두를 이긴 것 같이 느껴졌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죠. '이봐 들, 그거 알아? 오늘 내가 두 사람 엉덩이를 걷어찼다는 사실을 말이야!'

"내가 웨인에게 대항하여 달릴 때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직 그와 레이스를 할 때만 이었지요. 나는 정말 웨인의 라이딩을 존경했고 그가 트랙에서나 트랙 밖에서 그리고 우리가 은퇴하고 나서도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존경하고 있습니다."

"내가 챔피언쉽을 우승하는데 스스로 좋은 포지션에 들어가게 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웨인이 다치고 나서 나는 내가 우승해도 좋은지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웨이니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가 '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 거기에는 챔피언십을 위해 레이싱하는 많은 선수들이 있잖아. 단지 내가 실수를 했을 뿐이야.' 라고 말해줬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웨인이 1995년에 유럽에 돌아와서 야마하팀을 운영할 때는 그와 영원히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를 보면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갔어요. 나는 그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각주:7]

"나는 웨인이 다치고 내가 챔피언십을 우승했을 때, 스즈키에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넘버원 플레이트를 가졌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내가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할 수가 없어요.' 웨인은 나의 동기유발 요소였습니다. 나는 레이스 전체를 그를 이겨내기 위해서 노력했었지요. 94년 시즌 시작 당시, 바이크에서 떨어져서 팔이 부러졌을 때 나는 다시 돌아와서 레이스를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했어요. '이 멍청아. 바이크를 타면서 멀쩡하게 다치지 않고 달릴 수는 없어.'

  1. Toby Keith "As good as I once was" [본문으로]
  2. 안드레아 도비지오소는 어릴때부터 사용했던 34번이 케빈 슈완츠의 번호이기 때문에 MotoGP로 올라오면서 4번으로 바꾸었다. [본문으로]
  3. 웨인 레이니는 1993년,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케빈 슈완츠는 그 해에 월드챔피언이 되었다. [본문으로]
  4. 모터사이클 레전드. 1976, 77년 스즈키로 월드챔피언쉽 우승을 했다. 작년에 크리스 버뮬렌이 그가 스즈키에 있을때의 색상으로 호주 그랑프리에 나갔다. [본문으로]
  5. 킹 케니가 상위 선수들만 있는 포디움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슈완츠에게 뭘 하느냐고 묻자 슈완츠가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친 내용. 꽤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 [본문으로]
  6. 케니 로버츠는 말보로 야마하팀을 이끌었고 웨인 레이니는 그 팀의 라이더였다. [본문으로]
  7. 웨인 레이니와 케빈 슈완츠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의 일화는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본문으로]

Comment List

  1. 서정화
    2008/03/24 23:21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레이니가 부상당한 뒤론 마주치길 피했다니, 좀 뭉클하네요.
    그리고 주석이라니, 새로운 기능이네요!
    • 감사합니다. 주석은 저도 몰랐는데 한 번 넣어봤습니다. 예전에 괄호로 주석을 달던것에 비해서 무척 깔끔해진것 같습니다. 대신에, 접기 기능이랑 겹쳐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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